배우자 외도 상담의 70%가 동창회와 관련되었다는
온라인의 글을보고 문란한 요즘의 성 세태가 개탄스럽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순수하게 만나다 보면
정서적으로 쉽게 가까워 지기 마련인데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는 경우가 다반사인것 같다.
내가 자라 졸업한 산골의 초등학교는
한 학급만으로 약 30명이 6년을 동거동락 하였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학교를 기점으로
산너머 논실에는 이씨들이, 물건너 어영골에는 최씨
밀미는 박씨, 새밤에는 김씨, 그리고
내가살던 원지에는 권가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학교를 파하고
멀게는 약 5리길을 각각의 마을로 되돌아 가면서도
남녀가 같은 무리를 지어 걷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떨어져 걸어야만 했다.
유교적 관습이 강한 지역적 특색 때문인지
여자애들이랑 어울리기라도 하면
다음날 그저 이유없이 놀림감이 되기가 일쑤였다.
사춘기를 지나 멀리 타지로 진학후
주말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우연히 여자 동창생이랑 눈길이 마주쳐도
반가운 속 마음과는 다르게 무심한척 외면해 버리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였다.
6촌 여동생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한통의 편지를 전해주고는 내 표정을 살피는게 아닌가?
내용인즉 나와 사귀어 보고 싶다는 여자 동창생의 수줍은 편지글이었다.
귀까지 새빨겨져 오면서 쿵쾅거리는 가슴에 심장이 멎는듯 했다.
우째 그리도 부끄러웠던지..
그만 그 여동생 앞에서 편지를 쫙쫙 찢어버렸다.
그리곤 몇날 몇일을 잠을 못잤다.
졸업이래 친구들이랑 통 연락없이 지내다
중년의 나이에 처음으로 동창 모임을 어렵게 주선했다.
생각외로 많은 친구들이 낮선 얼굴로 반가히 찾아왔고
밀린 얘기들로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책상 서랍속에
몰래 새 지우개를 놓아둔 지나간 비밀의 주인공을 알고서는
멋쩍은 웃음으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한해두해
모임을 거듭할수록 술자리가 길어지고
거침없는 말투와 짙은 농들이 도를 넘는가 싶더니
노래방에서의 마지막 모습들은
점점 난장판에 가깝게 변해 버렸다.
이젠 동창회 모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어릴적
파란 하늘만큼 티없이 순수했던 맑은 추억들..
그저 어릴적 동심에서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